시의 세계

빨래

청양친구 2021. 12. 8. 11:01

 

빨래    /   이희정

 

육체가 침상에 널린 동안

나를 벗어버린 꿈들은 시공을 접어 빨래를 한다

내가 벗어던진 옷들은

낮은 돌담에서 애기똥풀 달래거나

작은 발자국들 오종종 마르는 갯고랑

고무신짝 위에서 큰 바다바람에 부풀고

때론 삶아져 수줍게 소독되었다

허수아비 감고 배알 없는 춤 추다가

쪽방 창가에 매달려 고드름 서걱거리고

아내 무릎 앞 다림질 기다리기도 했다

그러나 눈뜨면 늘 세탁기 쳇바퀴 속이었다

호청 밟으며 턱 들어 멀리 보시던 어머니

제자리걸음은 어디만큼 가셨을까

 

 

 

시집 '푸른누에'(학산문학사)에서 옮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