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의 세계

부지깽이

청양친구 2022. 5. 23. 10:08

 

부지깽이        /       이희정

 

 

백일장서 상 받아

오래두고 쓰리라던 만년필 잃고

상실감 앓던 날

엄니는 부지깽이를 찾아다니셨다

불씨 불어넣을 때

생선토막 올리려 불씨 끄집거나

굳은 허리 펴 일어설 때

잿간에 삼태기 털거나

뿔난 내 엉덩이 후려칠 때 늘 함께하며

몽당연필처럼 줄어갔어도

아궁이 곁 언제나 서 있을 줄 믿었던,

엄니도 만년필을 찾던 것이었다

부리나케 밭에서 달려와

구수하고 따끈한 시

뚝딱 한 상 써올리던

도깨비 방망이를

 

* 이희정 시집 '푸른 누에'에서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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