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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기자의 각오 / 이희정
친정에서 얻어온 구기자나무
밭두둑 빙 둘러 심으셨어,
보라색 꽃에 벌들 배부르고 주옥열매 치렁치렁
된서리 오도록 쪄서 말리고 쪄서 말리고 하노라면
허리 휜 가지에서 마른 잎들 우수수 쏟아졌지
아버지는 회갑상 자리서 글썽이셨어,
약골인 내가 회갑을 산 건 당신 덕이라고,
말리는 수고 못 이겨 마다하는 농사
아흔아홉 구비처럼 덖고 덖으며 살아온 당신은
영락없이 선홍의 저 열매를 닮았다고
칠갑산자락 지금도 피고 지는 구기자
아침햇살 영롱한 보석들은
낡은 흑백사진 속 입술연지 붉게 찍은 소녀,
홀어미 외아들께 시집와 가마 내려서 둘러보는
김부자댁 셋째딸의 당찬 각오가 반짝이고 있어