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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푸른 누에
    시의 세계 2021. 9. 7. 13:40

    푸른 누에     

     

    1

    잠이 단 날은 꿈이 없었다

    꿈을 꾼 날은 배가 고팠다

     

    2

    잎맥 삼천 발 먹고 넉잠은 자고 나서야

    명주실 윤기 흐르는 방에서 비단날개 기다린다 했던가

    스스로 허물 벗지 못한 무녀리의 서글픈 저녁나절

    그림자 부쩍 자라난 몸마디는 실루엣으로

    마른가지 위 탈선한 열차처럼 기울었네

    머리 세워 허공 저작하는 주둥이여

    저 석양줄기 몇 올 갉을 수 있다면

    해묵은 아궁이 속 불 지피어

    질긴 삶 몇 가닥 투명하게 삶아낼 수 있다면

    막다른 골목이여 푸근한 섶 되어다오

    가난한 별들 음표 그어 빛으로 노래하지 않는가

     

     

    이희정 시집 '푸른 누에' 에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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