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푸른 누에
1
잠이 단 날은 꿈이 없었다
꿈을 꾼 날은 배가 고팠다
2
잎맥 삼천 발 먹고 넉잠은 자고 나서야
명주실 윤기 흐르는 방에서 비단날개 기다린다 했던가
스스로 허물 벗지 못한 무녀리의 서글픈 저녁나절
그림자 부쩍 자라난 몸마디는 실루엣으로
마른가지 위 탈선한 열차처럼 기울었네
머리 세워 허공 저작하는 주둥이여
저 석양줄기 몇 올 갉을 수 있다면
해묵은 아궁이 속 불 지피어
질긴 삶 몇 가닥 투명하게 삶아낼 수 있다면
막다른 골목이여 푸근한 섶 되어다오
가난한 별들 음표 그어 빛으로 노래하지 않는가
이희정 시집 '푸른 누에' 에서